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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교향곡 1번 블루미네/ 거인과 꽃길

음반위의 유럽

by 써니윤 2017. 6. 27.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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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과 꽃길

말러 교향곡 1번 거인Titan 과 블루미네Blumine

 

스타츠카펠 드레스덴Sä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 

NFM, 폴란드 브로츠와프

 

by 써니윤

 

△ 브로츠와프 NFM 건물 외관, 신기하게도 강남교보문고 건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아하, 블루미네

 

타이탄이 왜 이렇게 짧아? 말러의 거대한 타이탄 교향곡을 기대하고 갔는데, 10분도 안 되서 곡이 끝나버렸다. 지휘자는 퇴장하고 남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 상당 인원들이 아예 나가버려서 이 곡이 끝났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프로그램을 다시 봤다. , 블루미네Blumine 만 연주하는 것이었구나.

 

Blumine(꽃의 노래)는 말러의 교향곡 1번의 별책 부록격의 악장으로, 말러가 약 10여년에 걸쳐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교향곡 1번에 포함되기도 혹은 아예 삭제되기도 했던 악장이다. 블루미네 , 꽃의 노래라는 곱상한 이름과 달리 파란만장한 역사 끝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음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곡은 말러가 27세였던 1887년 라이프치히에서 작곡을 시작하여 1888년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된 후, 프라하 등지에서 10년 동안 무려 6회 이상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블루미네가 늘 연주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연에서는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연주되었으나, 18943번째 공연을 앞두고 함부르크에서 수정한 악보에는 블루미네 부분의 페이지가 접혀 있는 것으로 보아 말러가 이 부분을 삭제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1896년 베를린 공연 전에는 아예 제외하여 연주되었고, 1899년에는 이 부분이 아예 삭제되어 최종 출판되었다.

 

대체 말러는 블루미네를 왜 삭제했을까? 이 곡을 직접 들어보니 이 악장을 왜 수년간의 고민 끝에 삭제하고 말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놓고 왜 버려야만 했을까? 그 것도 몇 년에 걸쳐서 공들여 작곡한 곡이었음에도 말이다. 연주 시간이 채 10분도 되지 않는 이 곡을 마치고 박수를 치기가 아까울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 연주 중에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이렇게 늘 인터미션 시간에 남기는 사진이 다이다. 그래도 이 사진이 그 때의 느낌과 감정이 떠올리는데 꽤 도움이 된다.

 

바그너 vs 말러

 

블로미네를 교향곡 1번에서 삭제했던 이유는 아마도 거인Titan 이라는 교향곡 1번 전체의 일관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인 교향곡와 꽃의 노래인 블루미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거인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거대함은 음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말러의 그 것은 결코 위압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다. 이 것이 바그너의 거대함과 말러의 장대함의 사이의 차이이다. 바그너의 반지에서 총동원되어 연주되는 금관악기는 마치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초인적인 거인이 적들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위협감으로 다가온다. 바그너의 반지는 상대방을 제압하고 말리라는 의지가 뭍어나는 반면 말러의 타이탄에서는 한계를 극복해 가는 한 과정과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이 지극히 인간적이다.  

 

 

△ 유서깊은 호텔 모노폴 앞에서 찍은 NFM 의 모습. 모네의 그림마냥 시간대 별로 달라지는 느낌에 이 자리에서는 늘 카메라를 들게 된다.

 

바그너의 반지’ 에 비해서 말러의 교향곡 1번은 인간의 강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그려낸 곡이지만, 여전히 거인이라는 표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거인 교향곡 1번에 블루미네가 들어간다면 전체를 흐르는 진취성과 추진력은 꽤나 달콤하게 흐르는 블루미네의 선율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 싶다. 마치 영웅담을 들려주는 중에 갑자기 첫사랑 이야기를 시작한 것 같이 뜬금없이 들리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을까? 게다가 정규 네 개의 악장이 아닌 추가로 악장 하나를 더 넣은 것이 블루미네 이니 형식상으로나 음악적인 내용적인 면으로나 모두 고민이 되었을 말러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초연에서부터 관객에게 혹평을 들은 터에 연주 때마다 수차례씩 수정을 하면서 뺏다 넣었다를 반복한 것을 보면 말러가 나만큼이나 블루미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까도 감히 짐작해 본다.

 

꽃길 걷는 거인

 

말러는 결국 거인에게 꽃길을 주지 않는 편을 택했다. 마지막 출판본에서 꽃의 노래 블루미네를 넣지 않은 말러의 선택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 속에는 적어도 말러의 인간적인 거인이라면 교향곡 1번의 한 부분으로 블루미네가 들어가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거인이라고 꽃길을 걷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특히나 말러의 거인이라면 말이다.

 

 

* 2017년 6월 10일 폴란드 브로츠와프 NFM 에서의 연주를 직접 듣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니엘 하딩Daniel Harding 지휘

스타츠카펠 드레스덴Sä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 

 

Programme:

G. Mahler Blumine  from 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Kindertotenlieder

***

A. Dvořák  Symphony No. 8 in G major Op. 88, B.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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