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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생활]드쉬니키 쇼팽 페스티벌/ 조성진/ 폴로네이즈/ 폴란드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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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2016. 8. 1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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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1회 두쉬니키 즈드루이

국제 쇼팽 페스티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개막 연주 2

 

 

 

 

 글, 사진 by 써니

 

 

△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연장 내부:

무대 위에는 올해의 축제 포스터가 올려져 있다.

 

 

 

폴란드의 정신을 표현해 낸 한국인

 

 

조성진은 한국 국적의 연주자 이다. 2015년 쇼팽 콩쿨 우승 후 우리나라에서의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조국에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다수 생겨나는 것은 분명히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연주자를 출신 국가로 구분 짓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국적은 그 연주자를 기억하기 좋도록 해 주는 여러 정보 중 하나일 뿐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조성진의 폴로네이즈 연주에서 만큼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폴란드의 색채와 민족적 감정을 지극히 폴란스 스럽게 표현해냈기 때문이고, 이에 대한 배경으로는 대한민국과 폴란드 양국의 역사 에서의 공통점 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 열리는 쇼팽 축제의 개막 연주자인 조성진의 프로그램에 폴로네이즈가 들어가 있지 않아 살짝 실망했었는데, 쇼팽의 프렐류드 op.28 의 연주 후 기립박수를 받은 그는 폴로네이즈Polonaise Op. 53 를 앙콜 연주로 들려주었다.

 

 

 

 

 Hotel Impresia 에서 열린 오전 11시 연주: 

축제 기간 내 연주는 9:30 마스터 클래스, 11시 연주, 4시 연주 그리고 8시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4시 연주와 8시 연주만 쇼팽의 집에서 연주되고 11시는 공연장 근처 호텔의 작은 룸에서 진행된다. 슈타인웨이 세컨 브랜드인 Boston 피아노가 연주되었다.

 

 

 

 

유럽 속의 한국: 폴란드

 

폴란드는 한국과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느낄 만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폴란드는 무려 123년 간의 식민지배를 받았을 만큼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서 생존 자체를 위협 받았던 나라이다. 백년이 넘도록 지도에서 나라 이름조차 없어졌다면 민족이 뿔뿔이 흩여질 법도 한데 폴란드 인들은 결국 나라의 독립을 이뤄내고 정체성을 지켜왔다. 폴란드 인들은 아픔을 겪은 민족이기도 하지만 나라를 지켜낸 자부심 또한 상당하다고 느꼈다.

 

우리나라 또한 나라를 잃었던 설움과 독립을 위해 맹렬히 저항했다는 점이 닮아 있다.  식민지 국에 통합되지 아니하고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민족의식과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폴란드는 한국의 유럽판 이라고 해도 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폴란드 분들은 외국인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고 느끼는데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과거 침략의 피해자였던 역사의 그림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여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원 내부:

어떤 약보다 이런 평온함 속의 쉼이 치료적이지 않을까?

 

 

 

 

폴란드에 의한, 폴란드를 위한 폴로네이즈

 

 

쇼팽의 폴로네이즈 op.53 은 1942년 쇼팽이 32세가 되던 해에 작곡이 되었는데,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1930년 11월 봉기, 1846년 크라쿠프 봉기 등이 벌어지며 곳곳에서 투쟁이 진행되던 때였다. 그 만큼 폴란드인들 사이에서는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 보다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쇼팽 또한 애국심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쇼팽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입대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기록이 있으나, 쇼팽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입대 의지를 접었다고 한다. 쇼팽 역시 나라의 독립을 열렬히 바라는 청년이었다.

 

 

쇼팽의 애국의 마음을 피아노 음악으로 담아낸 것이 폴로네이즈 이다. 특히 폴로네이즈 op. 53은 영웅 폴로네이즈 라는 별명이 있는데, 그가 직접 붙인 이름은 아니지만 이 곡을 한 번 들으면 단번에 이 별명을 이해할 수 있다. 폴로네이즈에는 곡 전체에 걸쳐 영웅다운 승리의 기개, 대담함과 용맹함이 넘치기 때문이다. 피아노 건반 전체를 거침없이 누비게 하는 넓은 스케일, 군인들이 행진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남성적인 리듬 등은 음악으로 이토록 시각적인 상상을 하는 것이 가능한 곡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쇼팽의 오랜 연인 조르주 상드도 이 곡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영감! 힘! 막강함! 이 곡이 프랑스 혁명에 소개 되어야 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부터 이 폴로네이즈는 영웅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그 당시 신문을 직접 발행할 만큼 여장부였던 조르주 상드가 그리 말했던 정도라니 연약한 몸 안에 마음은 조국 독립으로 불타고 있었음 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쇼팽의 외모 뒤편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지 않았을까.

 

 

 

 

 △ 쇼팽이 마셨던 약수:

쇼팽이 머물렀던 당시에는 매일 아침 6시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물을 받아갔다고 한다. 물을 받는 것을 도와줬던 소녀가 아버지를 잃게 되자 이를 마음 아파한 쇼팽이 이 곳에서 자선 공연을 열었다고 알려져 있다. 녹슨 뭔가를 먹는 맛이 났다.

 

 

 

 

한국인이 연주한 폴란드의 폴로네이즈

 

 

나는 개인적으로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쇼팽다움- 섬세하고 나긋 나긋한 선율- 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다는 이유가 하나였고, 또 하나는 이렇게까지 어렵게 곡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피아노 연주자 로서의 게으른 한탄이 그 이유였다. 폴로네이즈는 단지 쇼팽이 자신의 기교를 자랑해 보이기 위한 곡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심지어 음악이 시끄럽다고 까지 느꼈던 경우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조성진이 연주한 폴로네이즈는 나의 이런 오해를 완전히 풀어주었다. 조성진은 왜 이 곡이 그토록 숨막히게 격정적이어야 하는지, 왜 그리 수 많은 옥타브 스케일 진행이 있어야만 하는지 의미를 찾아냈고 그 것을 듣는 이들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해냈다.  조성진은 이 것에 온몸과 혼을 던졌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폴로네이즈는마냥 씩씩한 행진곡이 아니었다. 당당함 속에 억압과 이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이 느낌은 아마도 힘든 정국에서 독립을 열망하는 당시 폴란드의 상황을 말하고 하고 있지 않을까? 조국의 현실에서 쇼팽은 자신이 느낀 울분을 해소할 만한 영웅적인 폴란드의 모습을 음악으로 탄생시켰다. 조성진은 이런 정서를 구체적이고 상세히 전달해 내고 있었다. 이번 무대에서의 그의 연주는 쇼팽 콩쿨 실황 녹음에서 접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격정적이었고, 내 심장은 실제로 달리고 있는 것 처럼 뛰고 있었다.

 

"한국인의 아리랑에서 느끼는 정서를 이해하는 외국인이 있을까?" 라는 질문은 "폴란드인의 폴로네이즈에 담긴 정신을 소화하여 연주해낼 수 있는 외국인 연주자가 있을까" 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폴란드와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는 한국. 폴란드의 정신을 이해하는 외국인은 한국인이 일 수 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대로 내려오며 민족적으로 공유하는 정신세계를 말하는 집단 무의식이 바로 이런

 

 

 

 

△ 공연장 쪽에서 바라본 드쉬니키 즈드루이 공원:

며칠이고 머물고 싶다.

 

 

 

 

에필로그: 시몬네링 vs 조성진

 

 

8월 6일 오후 4시 쇼팽콩쿨 유일한 폴란드 출신 본선진출자 였던 시몬 네링Szymon Nehring 의 연주회에 갔다. 건물 밖에서 리허설 하는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 엄청난 에너지로 연습했다. 보통은 리허설 때는 본 연주에 쓸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 그렇게 전속력으로 달려서 연습하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시몬 네링의 피아노 소리는 무대에서 괜찮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소리가 컸다.

 

실제 공연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전날 조성진과 같은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볼륨 자체가 엄청났다. 185cm 정도는 훌쩍 넘을 같은 키의 시몬네링이 연주하는 쇼팽 에튀드Etude는 그 속도와 소리 크기 면에서 거의 "괴물" 급으로 느껴졌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태도 또한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섬세함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음악의 진행은 조성진의 전유물이었다.  시몬네링의 파워와 저력에도 감탄을 했지만, 다시 한번 피아니스트 조성진 만큼 쇼팽의 음악에 폴란드의 혼을 담아내는 연주자는 결코 흔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폴란드 두쉬니키 즈드루이 국제 쇼팽 페스티벌의

조성진의 개막공연 첫번째 리뷰 에 이어쓴 내용입니다.

 

리뷰 1 링크:

http://musicolock.tistory.co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