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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전주곡에 얽힌 이야기 마지막회/ 쇼팽/ 조성진/ 두쉬니키/ 마요르카/ 쇼팽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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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2016. 8. 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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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에 얽힌 이야기

: 마지막회



쇼팽의 프렐류드

x  조성진의 연주 


글, 사진 by 써니 



△ 두쉬니키 즈드루이의 공원의 전경: 매년 8월이면 쇼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곳의 쇼팽축제로 모여든다. 



* 이전 포스팅 내용에서 이어집니다.

1번째 이야기: http://musicolock.tistory.com/admin/entry/post/?id=17

2번째 이야기;http://musicolock.tistory.com/18



첫 번째로 할 말은 난 죽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난 죽어가고 있다는 것, 세 번째는 난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는 거야.”


마요르카 섬에서 친구 폰타나Fontana 에게 쓴 편지


발데모사에서의 어느 날 쇼팽은 팔마에서 돌아오는 조르주와 그녀의 아들 모리스를 마음을 졸이며 기다린다. 그날도 어김없이 폭우가 내리치는 중에, 쇼팽은 이 비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 커다란 관 같이 느껴졌던 만큼 병세가 짙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과 초조함은 시간이 갈 수록 더했다. 


팔마에서 발데모사 까지의 거리는 약 17km로 걸어서는 세 시간 반 정도 소요되지만 류마티즘을 앓고 있었던 상드의 걸음으로는 이 것보다는 더 소요되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동수단에 대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들이 탈 것을 이용했다고 해도 족히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 그리스 크레타섬 발로스 비치로 향하는 길:  조르쥬 상드와 모리스도 이런 길을 걸어왔을까? 


조르쥬 상드와 아들 모리스가 비바람을 맞으며 거쳐왔던 팔마에서 발데모사 수도원으로 오는 길울 쇼팽은 이렇게 묘사했다. 이러했다. “길은 계곡 물로 뒤 덮였고, 곳곳에는 산사태에다 길이 얼마나 파헤쳐져 있는지 작은 노새만이 여길 지나갈 수 있을 것일세. 자네가 이 동네 수레를 봐야 하네. 오로지 전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일세.”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사랑하는 이를 폭우에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만약에’ 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고, 매일 심한 기침에 시달렸던 쇼팽이 느낀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의지할 사람하나 없는 외딴 수도원의 버려진 방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절망적이었을까? 쇼팽 일행은 당시 현지의 보수적인 주민들에게 냉대를 받았다. 조르쥬 상드와 모리스가 만의 하나 잘 못 되더라도 이 소식을 전해줄 누군가를 기대할 수도 없는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 놓여있었다. 


조르쥬 상드와 모리스는 폭우 속에 거칠고 외진 길을 지나 한밤중에야 도착했는데, 얼마나 홀딱 젖었는지 쇼팽이 이들을 거의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 폴란드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원: 먼 타지에서 결핵과 외로움으로 힘들었던 쇼팽은16세에 요양을 했던 이 곳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 


빗방울 전주곡은 이 시기에 탄생되었다. 당시 쇼팽에게는 평범한 비가 아니었다. 조르쥬 상드의 표현에 의하면 “가슴에 후려치는 눈물” 과 같았다. 빗방울 소리를 듣기를 거부하면 할수록 더 마음을 파고들었다. 빗방울 전주곡의 중반부의 강렬함과 절박함은 쇼팽의 절망과 불안을 담은 것이었다.


이 시기의 작곡된 프렐류드 b 마이너와 e 마이너가 쇼팽의 장례식에 연주될 만큼 구슬픈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특히 프렐류드 e 마이너는 잠시만이라도 듣고 있으면 그 비통함에 파리에서의 쇼팽의 장례식 장면이 그려지는 듯 하다.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해 준 예술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어떠한 말 한마디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쇼팽이 죽음의 위기를 느낄 만큼 절망적인 감정에서 이 곡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 폴란드 남부의 산Gory Stolowe 에서 바라본 전경: 


모든 곡에는 그만의 작곡가의 감정을 담고 있겠지만, 특히 빗방울 전주곡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 것은 온전히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덕이다. 그는 쇼팽이 표현한 외로움과 고립감 그리고 절망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전달해냈다. 전주곡을 가벼운 소품 정도로 여겼던 나에게 그의 연주는 가히 충격에 가까웠다. 왜 왼손의 멜로디가 그 같은 무게로 연주되어야 하는지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깊이 이해하고 있었고, 곡에 담긴 쇼팽의 사연과 감정을 청중을 향해 표현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이 곡의 마무리이다. 내 마음에서 느낀 이 곡은 새드 엔딩이 아니다. 쇼팽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냈다. 중반부의 고통의 기다림은 지나가고 다시 평온한 빗소리로 돌아오는데, 아름답지만 긴장감이 느껴지는 앞부분과는 달리 마지막 부분은 현실의 고통을 초탈한 온전한 평화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그려진다. 고통을 겪은 후의 삶에 대한 사랑과 애잔함이 조용하지만 간절하게 들려진다. 


△ 폴란드 남부의 산Gory Stolowe 입구: 


빗방울 전주곡의 뒷부분은 시작 부분과 완전히 같은 음표로 쓰여 있지만, 행간의 의미를 읽어 다른 의미로 연주하여 전달하는 것은 온전히 연주자의 몫으로 남기에 나에게 이런 해석을 안겨준 연주자의 음악성과 표현력에 고개숙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게 된다. 


내가 쇼팽을 사랑하는 이유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음악에 지극히 낭만적으로 녹여내기 때문이다. 폴로네이즈에서 폴란드의 영광스러운 승리와 현실의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했듯이, 빗방울 전주곡에서도 지금의 고통과 절망으로만 곡을 마치지 않았다. 삶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간절하게 드러내며 음악이 마무리 된다. 쇼팽의 말 처럼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지금 보는 이 하늘이 지나가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될 것이네.’

쇼팽의 편지 중에서



*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YN8OCSnNKg

(빗방울 전주곡은 0:32 부터나옵니다)


* 쇼팽의 프렐류드 e minor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f-4Bv5Ng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