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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조성진/ 두쉬니키/프렐류드/ 쇼팽/ 폴란드/ 마요르카/ 조르쥬상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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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2016. 8.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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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사랑한 유럽]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에 얽힌 사연 


조성진의 연주

X  마요르카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글, 사진 by 써니


폴란드 브로츠와프 시내 소금광장에서 바라본 시청사 건물: 2차 세계대전으로 70% 이상이 파괴되어 복원된 건물이 대부분이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과 나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나에게 각별한 의미의 곡이다. 2014년 발렌타인 데이에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도착했는데, 폴란드라는 나라에 난생 처음 도착하여 들렸던 곡이 바로 이 빗방울 전주곡이었다. 특이하게도 폴란드 항공은 승객들이 내릴 때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폴란드라는 미지의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디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뒤섞여 있는 상태에서 들려온 멜로디라 지금까지도 꽤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비록 전자음악으로 연주된 다소 투박한 소리였지만, 폴란드는 쇼팽의 나라임을 에 대한 자부심을 간접적으로나마 추측할 수 있었다. 빗방울 전주곡의 달콤한 멜로디 덕에 잘 알지 못하는 나라 폴란드에 대한 나의 불안감과 긴 비행의 고단함을 사탕을 하나 입에 문 것처럼 잠시나마 달랠 수 있었다.



프렐류드는 전주곡일 뿐일까? 


난 쇼팽의 전주곡에 분명 아름다운 멜로디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대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4개의 꽤나 짧은 곡으로 이루어진 전주곡은 이름에서 느끼는 것과 같이 후에 이어지는 곡을 준비하는 정도의 무게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프렐류드는 폴로네이즈처럼 거대한 스케일이 느껴지지도, 에튀드처럼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지도, 녹턴처럼 우수에 젖은 분위기가 연출되지도 않았다. 마치 본 요리에 사용되지 않은 짜투리 재료처럼 신선하기는 하나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닌 소품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에서 여름이면 열리는 쇼팽 콘서트: 수많은 인파가 몰려와 쇼팽의 음악을 즐긴다. 


전주곡 중 가장 알려진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면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그저 봄비 마냥 보슬보슬 기분 좋게 내리는 비를 창가에 앉아 바라보는 우아한 장면이 다였다. 쇼팽하면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귀족적인 이미지가 있었기에 잘 꾸며진 공간에서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며 이 곡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이 다였다.



71회 두쉬니키 즈드루이 쇼팽 국제 페스티벌이 열린 공연장 뒷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개막공연 직전의 모습이다. 그의 리허설 소리가 들려온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생명을 불어넣은 프렐류드


하지만 이번 두쉬니키 쇼팽 축제에서 접한 조성진의 연주는 빗방을 전주곡에 대한 이런 나의 고정과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그가 풀어내는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나니 쇼팽이 과연 이 곡을 어떤 감정상태에서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품게 했다. 곡의 시작부터 울리는 빗방울 소리를 닳은 반주는 결코 음량이 크지는 않았지만 마냥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빗소리만은 아님이 느껴졌다. 걱정과 한탄의 무게가 들어있었다. 빗소리 위에서 펼쳐지는 오른손 멜로디는 지극히 간결한 리듬과 제한된 음역에도 그 멜로디를 따라 내 마음도 소리없이 걷고 있었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빗방울 전주곡의 백미는 곡의 중앙 부분이었다. 빗방울 소리 반주가 오른손으로 넘어가고 왼손의 낮은 음역 대에서 옥타브로 진행되는 멜로디가 하나하나 울릴 때 마다 내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온 힘을 다해 누르는 힘겨움이 묻어났다. 이제 그만 다시 오른손의 평화로운 멜로디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될 정도로 흥분과 격렬함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바라본 지중해: 쇼팽과 조르쥬 상드도 이 바다를 건너 마요르카로 향했을 것이다. 


마요르카, 쇼팽 그리고 빗방울 전주곡


조성진이 온몸을 던져 표현한 빗방울 전주곡, 내가 그를 통해 느낀 쇼팽의 감정의 근본에는 이를 설명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쇼팽은 1838년, 28살 에 연인 조르쥬 상드와 파리의 추운 날씨를 피해 스페인 동쪽에 위치한 마요르카 섬으로 떠나게 된다. 쇼팽보다 5살 가량 나이가 많은 조르쥬 상드는 이혼 후 얻은 두 아이의 양육권이 있었고, 아들 모리스와 쇼팽의 휴식을 위해 남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스페인 메노르카(Menorca)섬 의 비치: 내가 가본 곳 중에 마요르카 섬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큰섬, 작은 섬이라는 의미로 나란히 마요르카, 메노르카로 불릴 만큼 서로 가까이 위치해 있다. 쇼팽과 조르쥬 상드는 당시 이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파리에서 이 곳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만 1200km 에 달하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거의 3배 정도에 라고 상상하니 여행길이 결코 수월하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육로와 뱃길을 거쳐서 도착한 마요르카의 도시 팔마Palma. 야자수와 푸른 지중해, 남국의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한 이 곳은 쇼팽에게 어린 시절 이후에 가장 행복한 시절의 배경이면서 동시에 목숨의 위협을 받을 만큼 마음과 몸이 모두 고통을 겪은 장소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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