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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생활]쇼팽 녹턴의 밤/두쉬니키 즈드루이/ 폴란드/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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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2016. 8. 17.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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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녹턴 그리고 낭만


제 71회 드쉬니키 즈드루이 쇼팽 페스티벌 

쇼팽의 밤 리뷰


글, 사진 by 써니 


△ 관객 석에 위치한 두 대의 피아노. 슈타인웨이와 야마하 피아노가 연주되었다. 


촛불 그리고 야상곡

촛불과 야상곡은 그 만남 자체가 운명이다. 촛불을 켜고 녹턴 연주를 듣는다는 것을 들었을 때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감미롭게 노래하는 멜로디의 녹턴은 그렇게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듣도록 의도되어 작곡된 것 마냥 둘의 조합이 완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그 상상을 실제로 실현해낸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촛불, 녹턴이 쇼팽이 머물렀던 두쉬니키에서 그 것도 모든 것이 고요해진 밤에 연주되다니 더 이상 낭만적인 조합일 수 없었다. 


10시에 시작하는 공연이라 약 2시간 가량 차를 타고 이동 하는 중에 잠을 미리 자두어야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나의 들뜬 감성은 이성의 조언쯤은 가볍게 무시했다. 같이 한 분들과 도착한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었는데 한여름에는 8시에도 환했었던 해가 벌써부터 지기 시작하니 내 마음도 이미 연주회가 이미 시작한 것 같이 설레임이 한 층 더 했다.



△ 무대 위의 쇼팽 상과 존경을 담은 장미:


쇼팽, 그 시대로의 여행


연주회장 분위기는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이브닝 파티에 온 마냥 관객들은 연주자 못지 않게 한껏 차려입고 있는 이 들이 여럿이어서 이 연주가 심상치 않은 것 임을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무대 없이 관중석의 중앙에 위치한 두 대의 피아노, 이를 둘러싼 청중석은 층간의 차이 없이 모두 하나의 공간에 있었다. 관객과 피아노 사이에 놓인 하얀 촛불을 보는 순간 이미 쇼팽의 녹턴 씨디 하나를 다 들은 것 같은 감정상태가 되고 말았다.


연주가 시작되니 쇼팽이 공연을 했던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내 몸을 옮겨다 놓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어떠한 생각도 분석도 할 필요가 없었다. 밤 10시 두쉬니키의 어둠은 음악을 파헤쳐 들으려는 나의 이성을 너무나 쉽게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그저 귀와 몸을 흐르는 음악에 맡기기만 하면 되었기에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 보았다. 세상과 차단된 진공상태에서 모든 감각이 피아노 선율의 흐름에 따라 떠다니도록 두는 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였다. 테크닉 연마 여부도 연주자의 움직임도 이 때 만큼은 잊을 수 있도록 허용된 것만 같았다. 오로지 청각적 아름다움에만 온전히 빠질 수 있었다.


△ 공연 중 해설을 하신 이레네 교수님 

ⓒ 두쉬니키 즈드루이 협회에서 가져온 사진임을 밝힙니다. 



감성이 지배하는 그 곳  


10명의 연주자가 서로 다른 곡을 연주하는 이 연주를 일반적인 공연과 구별지어주는 큰 이유는 바로 이레나Irena Poniatowska 교수님의 권위자다운 열정이 돋보이는 해설이다. 안타깝게도 폴란드어라서 알아들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자 사이에 쇼팽의 일대기와 에피소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폴란드 인들의 쇼팽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예의를 갖춰 경청하는 모습이 존경심 마져 들었다. 


80세를 이미 넘으신 이레나 교수님의 설명은 연주자가 많아서 자칫 산만해 질 수 있는 분위기를 정돈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이 뿐 아니라 교수님의 해박하고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설명을 통해 청중들은 쇼팽의 음악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 공연을 마친 후 쇼팽의 집모든 순서를 마친 시간은 12시가 훌쩍 넘었지만 연주 후 흥분은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쇼팽의 감성과 두 대의 피아노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쇼팽이 왜 일반 공연장보다 살롱 음악회를 선호했는지, 왜 공연장에서의 연주를 인공적이라고 평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주자의 움직임과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신선한 음악을 선사하는 일반 공연도 귀가 호강하는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살롱 음악회에서는 이러한 현장감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슈타인웨이와 야마하 피아노가 서로 엇갈려서 중앙에 위치해 있었지만, 두 개의 피아노를 쓰는 연주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연주자의 취향대로 두 피아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거의 예외 없이 최고의 음질과 전달력을 자랑하는 슈타인웨이지만 이번에는 판도가 달랐다. 야마하 피아노의 나지막한 소리는 살롱 콘서트에 제격이었다. 슈타인웨이가 파리 패션 위크 런웨이에서 보여주는 도도한 모델이라면 야마하 피아노는 평상복을 입었지만 누구보다 센스가 돋보이게 옷을 차려 입은 여인과 같았다.


△ 슈타인웨이 피아노(우측)와 야마하 피아노(좌측):  


수 천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서 위용을 드러내는 슈타인웨이지만, 기품 있으면서 겸손한 야마하 피아노의 소리를 다시 보게 되었다. 특히 피아니스트 매리엄Mariam Batsashivili 의 리스트 라 캄파넬라 연주는 화려한 기교를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를 귀에 대고 속삭여주는 듯했다. 고즈넉한 연주 분위기에 맞추어서 연주자가 배려한 것이 아닐까란 다소 자의적인 감탄에 누구보다 감사의 박수를 누구보다 길게 보내 주었다. 


마지막 연주자 다니엘Daniel Kharitonov 은 하얀 얼굴, 마른 손, 여린 몸과 섬세한 표정으로 쇼팽의 대표적인 녹턴인 op.9 no.2 를 연주했는데, 이 곳 와서 연주를 했던 16세의 쇼팽을 보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져보기도 했다.



△ 두쉬니키 즈드루이의 쇼팽의 집: 언제 다시 보게 될지모른다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확히 7일 전 이 시간 폴란드 두쉬니키 즈드루이에서 경험한 녹턴의 밤은 나를 어떤 다른 세상에 있었던 마냥 홀리게 했다. 이제야 현실로 겨우 돌아온 느낌에 오늘 하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멍하기까지 하다. 음악과 쇼팽을 깊이 사랑하는 민족 폴란드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든 것은 물론일 것이다. 쇼팽의 나라 폴란드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두쉬니키 쇼팽 페스티벌 협회 측의 사진은 저작권을 존중합니다. 나머지의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문제 제기시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 이레네 교수님의 해설 영문판을 구해주신 JY 언니께 깊은 감사드리며, 이에 대한 포스팅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