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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생활] 두쉬니키 즈드루이 국제 쇼팽 페스티벌/ 조성진/ 폴란드 음식/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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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2016. 8. 13.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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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1회 두쉬니키 즈드루이

국제 쇼팽 페스티벌

 

 

쇼팽의 마음을 느껴보다  

 

 

글, 사진 by 써니

 

 

 

 

△ 축제 기간 내 11시 리사이틀 공연이 열린 호텔:

휴양지 답게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원 근처에는 마을 규모에 비해 상당히 많은 호텔과 식당이 위치해 있다.

 

 

세상 너머의 공간: 힐링

 

 

조성진과 시몬 네링Szymon Nehring  연주의 여운은 다음 날까지도 가시지 않았다. 두 피아니스트의 것 모두 사실 충격에 가까웠던 연주였던 만큼 그들이 연주했던 곡들이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조금이라도 연주를 머릿 속에또 마음 속에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공연장이 위치한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원으로 향했다. 이 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면 이 연주를 내 마음 깊숙히 저장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오전의 햇살이 맑게 비치는 공원은 어제의 연주의 아우라는 물론 그 이상의 것을 선사했다. 이런 것이 쉼이고 휴식이고 바로 힐링이구나.  푸른 녹음과 한산함을 한껏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을 걷다보면 맑은 공기에 저절로 숨을 깊이 들이 마셔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난 이틀 동안이나 세계 최고라 감히 칭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의 음악으로 감성을 충전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원에서는 조성진의 쇼팽 콩쿨 실황 연주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전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공원의 곳곳을 돌아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산책을 했다. 시각, 청각, 후각 이 모든 감각이 세상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어떤 환상의 세계에 와 있는 듯 했다.

 

 

 

 

△ 공원 내 약수터가 있는 건물:

 

 

 

힐링의 원천: 쇼팽의 원천  

 

쇼팽은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자신이 살던 바르샤바에서 400여 km 떨어져 있는 이 곳을 찾았는데 당시 이 곳은 폴란드 영토가 아닌 프로이센 땅으로, 두쉬니키 즈드루이(당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다)를 택한 이유는 스승 엘스너의 추천 때문이었다. 이 공원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는 쇼팽이 외국에서의 첫 연주회가 된다.

 

16세의 젊은 쇼팽이 얼마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았으면 요양까지 추천을 받았을까 싶은데, 아픈 와중에 자선 공연을 할 생각까지 하다니 그의 인품에 대해 다시 보게 된다. 당시 쇼팽은 음악가로서 커리어를 이미 시작한 단계였다. 1825년 15세의 쇼팽은 친구들과 공연을 했고 자신의 작품을 정식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쇼팽은 충분히 자만할 수 있었고 굳이 시골 동네의 힘없는 소녀를 도울 실질적인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쇼팽은 돈도 명성도 아닌 물 긷는 고아 소녀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사용했다.

 

 

 

△ 드쉬니키 즈드루이의 약수:

6가지 다른 약수가 나오는 샘이다. 입장료 1.5즈워티(한화로 약 400원 정도) 를 내고 들어가면 약수를 마셔볼 수 있다. 약수를 식수로 받아가는 우리와 달리 여기의 약수는 컵으로 받아 조금씩 마신다. 식수로 많은 양을 먹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놋물 맛이 많이 난다.

 

 

 

쇼팽의 마음이 담긴 마을

 

 

그런 쇼팽의 따뜻한 마음이 이 공원에 깃들여 있는 것일까. 내가 사는 곳에서 불과 2시간도 안 되는 곳인데 여기 있는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영화 "나니아 연대기" 에서 옷장 안에 들어가면 "나니아" 가 열리는 것 처럼 말이다.

 

두쉬니키 즈드루이는 단지 쇼팽이 스쳐 지나간 곳만이 아니었다. 쇼팽의 발자취와 더불어 그가 마음을 연 곳이고, 연민의 마음이 담긴 곳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곳의 느낌은 어느 여행지나 휴양지보다 따뜻하고 아늑했다. 일류 호텔이나 알려진 관광지도 전혀 없는 작은 시골 마을 일 뿐인데 말이다. 마치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처음 와본 곳이었으나 서먹하거나 낯설지가 않았다.

 

쇼팽은 이 곳에서의 휴양 후에 바르샤바로 돌아가서 학업을 계속하게 되는데 여기서 쉬는 기간 동안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이를 향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 때문에 그 자신의 몸과 마음도 채워졌으리라 생각해 본다.

 

 

 

 

△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원 내 산책로:

축제 기간을 알리는 쇼팽이 그려진 현수막이 걸려져 있다. 축제라 해도 절대 시끌벅적 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폴란드인의 사랑: 쇼팽

 

 

두쉬니키 즈드루이의 역사를 기록한 책자에는 공연장이 본래는 극장theatre 이었다고 밝혀져 있다. 1946년 첫 번째 축제를 위해 공연장으로 재 단장되었는데, 8월 한여름에 열릴 행사이기에 쾌적한 환경에서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시설이 설계되었다. 

 

이 곳 공연장의 독특한 점은 무대 중앙에 쇼팽상이 놓여져 있다는 점이다. 연주자와 청중 모두 연주 중에도 쇼팽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폴란드인의 쇼팽에 사랑은 가히 전폭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수년 전에 영국에서 알던 폴란드 친구가 있었는데 음악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음에도 피아노에 앉아서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공항 이름을 마담퀴리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유명인을 제치고 "쇼팽" 공항으로 지은 것을 보면 쇼팽은 폴란드를 자타공인 폴란드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 두쉬니키 즈드루이 공원을 나서면서: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다시 한번 사진기를 누르게 된다.

 

 

 

 

△ 슈타인웨이 피아노 협찬을 알리는 포스터:

이 포스터 앞에 있었던 아이스크림으로

 

 

 

아이스크림은 폴란드

 

여담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렉(소시지가 들은 시큼한 맛의 수프)이나 골롱카(폴란드식 족발), 피에로기(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폴란드식 만두)를 제치고 단연 아이스크림을 들 것이다. 폴란드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해서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다 큰 어른, 심지어 할아버지 까지도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며 먹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곳 아이스크림은 그야말로 수제로 만든 천연의 맛을 자랑한다. 사실 나는 이탈리아 젤라또에 적잖이 실망했는데, 폴란드의 질 좋은 아이스크림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브로츠와프Wroclaw 의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 폴리시 로디Polish Lody는 천연재료로 아이스크림을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데, 고정 메뉴 몇 개를 빼고는 재료에 따라 메뉴가 매일 바뀐다. 오늘의 아이스크림 메뉴는 페이스북으로 업데이트 된다. 이 곳의 아이스크림은 한 여름에는 보통 30분씩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곳 폴란드에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베**라** 아이스크림이 단 하나도 없다. 떠나는 아쉬움을 공연장 입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으로 달래보았다.

 

깊은 쉼과 영감을 준 두쉬니키 즈드루이, 조성진, 시몬네링 그리고 함께 한 분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을 가득 안고 브로츠와프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겨본다.

 

 

☆ 두쉬니키 즈드루이 축제만의 로맨틱한 행사인 촛불과 녹턴이 어우러진  이브닝 공연 후기도 곧 이어집니다. 

 

 

 

 

☆ 두쉬니키 즈드루이 국제 쇼팽 페스티발의 배경:

 

 

 

 

 

☆ 2016년 8월 5일 조성진 개막 공연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