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드레스덴 이야기: 유럽의 보물상자/아우구스투스 강건왕/그린볼트 박물관/스타츠카펠 드레스덴 오케스트라/

카테고리 없음

by 써니윤 2017. 7. 14. 19:31

본문

드레스덴 이야기

유럽의 보물상자 & 스카프타펠 드레스덴 오케스트라  

 

by 써니윤

 

그린볼트 입구에 걸린 박물관의 재건 전 사진. 건물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 정도는 심각했다.

 

3,900 톤의 폭탄이 독일 동부의 도시 드레스덴 상공에서 투하되었다. 반경 6.5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심의 90퍼센트는 이틀에 걸친 연합군의 집중 폭격에 의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되었다. 군사시설이 아닌 도시의 정중앙을 폭격했기에 사상자의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 등의 민간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1945213일의 일이었다.

 

 

불과 10년여 전인 2006년의 모습.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에야 복원이 시작되어 현재 수준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후에 처칠 영국 수상 등의 지도자들은 이 곳을 공격한 이유를 드레스덴이 나치군과 연합군의 최접경지이자 교통과 물자의 중심지로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이유를 대지만, 실은 드레스덴을 공격한 것은 독일의 문화적 심장부를 가격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전쟁의 막바지에 달한 연합군은 독일의 혼과 문화가 담긴 이 곳을 잔인하도록 무너뜨렸다. 이 폭격 이후 심지어 연합군 내부에서도 전쟁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는 기록을 보면, 드레스덴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문화의 역사적 자산이 응집되어 담긴 도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귀족자제들의 교육 차원에서 유럽의 주요한 도시를 여행하는 그랜드 투어에서도 드레스덴은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꼽혔다.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역사적인 유산이 가득한 곳인 만큼 국적을 불문한 전 유럽인의 사랑을 받은 곳이 드레스덴 이었다.

 

 

이후 수 십년 동안에도 드레스덴 공습은 드레스덴이 위치한 동독은 물론 영국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은 계 대전의 긴장속에서도 이 곳이 얼마나 애정과 관심을 받는 곳인지를 반증해 준다. 다른 여타 도시보다도 유독 드레스덴 파괴에 대해 찬반 의견이 거셌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드레스덴: 유럽의 보석상자

드레스덴 중심에 있는 히스토릭 그린볼트Historic Green Vault 박물관 내의 삼엄한 이중문을 지나 만난 곳은 작은 방 그 이상이었다. 호박amber 으로 세공한 갖가지 작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의 크기만 작았을 뿐이지 벽에 세워져 있는 선반에 놓여있는 작품의 수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놀라운 작품들이 진짜로 내가 알고 있는 그 호박이 맞는지 확인하느라 온정신이 내 눈에 집중되었다. 호박을 재료로 만드는 것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모양의 작품들이 내 눈 바로 앞에 펼쳐져 있었다. 호박하면 투박하고 노란 색 돌쯤으로 여겼는데, 내 키만한 크기로 갖가지 채도로 촘촘히 모양을 이루고 있는 호박으로 만든 가구의 모습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유리관에 단단히 둘러싸여 보안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귀한 작품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호박으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의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호박방을 지나자 상아 특유의 아이보리 색에 다시 내 눈은 놀라움으로 사방의 벽면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 만지기라도 하면 부러질 것 같이 정교하게 세공한 상아가 감히 누군가가 깎아서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코끼리의 상아가 머리카락 몇 가닥을 붙여놓은 듯하게 가늘고 촘촘하게 깎일 수가 있을까. 

 

 이어서 만난 다이아몬드 등의 최고급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 등이 있는 방, 청동으로 된 예술 작품들이 있는 방을 통과하는 느낌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물약을 마시고 키가 작아진 후 커다란 자기 키보다 커진 보석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듯 했다. 벽면을 가득 채우게 전시되어 있는 크고 작은 작품을 보면서 드레스덴이 보석함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내 눈앞에 있는 장면만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진기와 가방은 물론 물병 하나도 반입이 금지된 곳이라 이 방의 진귀한 보석 작품을 눈으로 담는 것이 아쉬워서 지나왔던 방에 다시 뒤돌아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또 모든 방이 그 곳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의 색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벽면의 재질과 색상을 선정했다고 하니 도대체 이토록 섬세하게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한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우구스투스 강건왕Augustus the Strong(1670-1733):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왕. 말발굽을 맨손으로 구부렸다는 에피소드 등 신체적으로 매우 강인했다는 사실 덕에 강건왕the Strong 이라는 이라고 불린다.

 

아우구스투스 강건왕: 폴란드와 작센주 의 통치자

작센주의 선제후였던 아우구스투스 강건왕은 베르사이유 궁으로 대표되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을 열망했다. 그는 강력한 절대 권력을 가진 프랑스왕을 모델로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랬고, 그에 걸맞는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자 보물을 수집하게 시작했다. 당시 유리세공으로 명성을 날리던 밀라노에서도 작품을 공수해 오는 것 이외에도 인도에서 가장 큰 초록색 다이아몬드를 런던을 통해 드레스덴까지 가지고 온 것도 아우구스투스 2세의 노력이었다. 궁전의 옆 날개 부분에 박물관이 될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제후 모리츠가 한 일이지만 실제로 이 곳을 진귀한 보석과 예술작품으로 장식한 이는 바로 아우구스투스 2세이다.

 

 

군주의 행렬: 이 곳을 다스린 군주들의 이름과 통치기간이 인물화와 더불어 이어져 표현되어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작센 지방의 선제후였던 아우구스투스 2세는 폴란드의 국왕을 겸직했다는 점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한 주state 였던 작센의 통치자였던 그는 폴란드 국왕에 선출되기 위해 지금의 개신교의 뿌리인 루터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까지 불사했고, 강력한 왕권을 꿈꾼 그의 야망 덕에 드레스덴은 독일 바로크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비록 그가 정치적으로는 폴란드의 국력강화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적어도 드레스덴을 독일 최고의 문화 도시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곳으로 만든 장본인임은 분명하다.

 

 

△히스토릭 그린볼트는 사진기 반입이 금지되는 반면, 윗층에 있는 뉴그린볼트 박물관의 작품은 촬영이 허용된다. 1600에 만들어진 작품. 맨꼭대기 층 구르시 시작하는 철공이 아래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정확히 계산되어 설계되었다.

 

 

드레스덴의 보석 같은 음악

: 스타츠카펠 드레스덴 Staatskappelle Dresden

 

그린 볼트에서 만난 극도로 정교한 세공작품들은 단지 예술작품만이 아니었다. 원재료의 무게와 균형 까지 정확하게 계산하여 만들어진 공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철로 된 공이 작품의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정확한 시간동안 이동하도록 설계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활을 쏘는 사수 모양의 작품은 눈동자를 굴리며 식탁에서 이동하여 활을 쏘는 동작까지 하도록 설계된 것 까지 있었다. 이 곳의 많은 작품들은 예술과 정밀한 과학의 정수가 서로 만난 합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완전히 상반될 것 같은 공학과 아름다움을 손잡게 한 작품은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만나면 서로의 장점이 극대화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테이블에서 이동하여 화살을 쏘면 건배를 했다는 작품. 공학과 예술작품이 완벽하게 만난 예를 보여준다.

 

그린 볼트의 작품에서의 정밀하게 계산된 아름다움. 이는 스타츠카펠 드레스덴 오케스트라 가 만든 음악과 신기하게도 일맥상통했다. 창단한지 약 470년이 된 스타츠카펠 드레스덴을 610일 폴란드 브로츠와프 NFM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말러의 블루미네와 Kindertotenlieder 등을 연주했는데, 스타츠카펠 드레스덴 단원들의 표정에는 여느 오케스트라의 구성원보다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소리의 질 또한 정상급의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임이 의심할 구석이 없었음은 물론이었으나, 단원 한명 한명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마치 솔로 연주자 이상의 당당함과 자존심은 다른 어떤 유수 오케스트라보다 돋보였다. 스타프카펠 드레스덴은 흠잡을 곳 없는 양질의 악기의 소리와 특유의 자로 잰 듯 정교히 계산된 아름다움을 선사했는데, 11초의 움직임도 모두 정밀하게 계획하고 약속된 듯이 움직이는 음악은 공학과 예술의 만남을 완벽하게 선사한 그린 볼트의 예술 작품과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연주를 접한 것은 6, 그리고 그린 볼트에 간 것은 7월이라 한 달간의 간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스덴의 그린 볼트에서 만난 작품에서 자동적으로 스타츠카펠 드레스덴이 떠올려졌다.

  신 그린볼트 박물관의 작품

실제로도 박물관을 건축하기 시작한 작센의 선제후 모리츠 공Moritz van Sachsen은 바로 1548년에 스타프카펠 드레스덴을 창단한 동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같은 형제와 같은 그린 볼트와 스타츠카펠 드레스덴 오케스트라가 형제처럼 닮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린 볼트가 드레스덴의 화려한 문화적 유산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스타츠카펠 드레스덴의 연주는 드레스덴의 예술적 수준을 나타낸 그린 볼트의 예술 작품을 소리로 표현한 버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이 둘은 서로의 모습을 다른 매체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

 

 

  신 그린볼트 박물관의 작품

 

2차세계 대전에 파괴되어 적국인 연합군조차 안타까워했던 도시, 아우구스투스 강건왕을 통해 독일 바로크의 꽃을 피웠던 이 곳, 그리고 바로크 시대 화려한 유럽의 문화를 대표하는 드레스덴에서 창단된 스타츠카펠 드레스덴 오케스트라는 당시 유럽 문화 특히 독일 작센지방의 바로크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공학의 정교함과 예술성의 완벽한 만남을 선사한 드레스덴의 그린 볼트와 스타츠카펠 드레스덴 오케스트라는 유럽의 보물 상자임 틀림이 없다.

 

여행팁

☆ 히스토릭 그린 볼트Historic Green Vault

1층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강건왕 당시의 보석을 진열해 놓은 방을 복원한 곳. 시간대 별로 나누어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다.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입장권에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 신관 그린 볼트

같은 건물의 2층에 있는 박물관. 이 역시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드레스덴의 여러 박물관에 대한 안내 사이트:

http://www.skd.museum/

 

* 그린 볼트 박물관은 우리말로 녹색궁륭관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치의 한 부분을 일컫는 '궁륭' 이라는 낯선 우리말 보다는 보다 쉬운 영어 명치인 그린 볼트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