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조성진 공연후기 2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폴란드 브로츠와프

음반위의 유럽

by 써니윤 2017. 6. 9. 06:38

본문

베토벤도 미소를?

피아니스트 조성진 NFM 브로츠와프, 폴란드 공연 후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by 써니윤

 

 

 

베토벤도 웃었을까?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미소짓는 베토벤의 얼굴을 상상해 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데우스 영화에서 정신없는 웃음소리를 쏟아내는 모차르트면 몰라도 베토벤의 얼굴을 보면 이 진지함 순도 100%의 음악가가 과연 미소는커녕 웃은 적이라도 있었을까는 의문이 들 지경임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상남자 베토벤?  

 

실제로도 베토벤은 꽤나 괴팍했다. 베토벤이 쓴 필사본 악보를 보고 연주용 악보로 옮기는 카피스트 들도 베토벤에게 사소한 질문을 하기도 꺼려했던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해 준다. 게다가 베토벤은 상당한 악필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니 알아보기 힘든 글씨를 암호해독을 할지언정 그에게 말을 거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묻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외모도 성격을 보여주는 듯 했다. 크기도 안 맞는 옷을 대충 걸치고 다니는 일은 다반사에 머리는 거의 빗지 않아서 항상 헝클어져 있는데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걸핏하면 사람을 노려보는 일이 다반사 였다고 하니 필시 호감형 사람은 아님에는 틀림이 없다. 게다가 문화의 중심이었던 세련된 빈 사람들 눈에 투박한 성격과 외모의 베토벤은 여지없는 촌사람으로 보였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싶다.

 

 

 

외모도 평균 이하에 예절도 갖추지 못한, 아니 아예 갖출 생각도 없는 음악가가 어떻게 당시 귀족과 왕족사이에서 그토록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 시대는 음악가가 귀족과 왕족의 보호와 후원이 없으면 아예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였다. 말이 보호지 직설적으로 말하면 음악 하인인 격이었다. 베토벤이 빈에 왔을 20대에 당시 60대 노장이었던 하이든도 평생 하인 복장을 벗지 않았으며, 당대 최고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도 귀족과의 굴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보고자 몸부림치다 결국 평탄치 않은 말년을 보내지 않았던가. 귀족에게 아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한 베토벤이 어떻게 작곡만으로 살아간 최초의 독립적인 음악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귀족의 요구가 아닌 단지 자신의 창작 욕구 만으로 작곡을 한 역사상 최초의 인물인 베토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졌다.

 

베토벤에게도 사랑이

베토벤의 투박한 외모와 거친 성격에 반해 그의 감수성은 남달랐다. 20대의 젊은 베토벤은 여느 청년 못지 않은 섬세함과 연애 감정이 있었다. 당시 빈에 갓 상경한 베토벤은 고향 본에서 안면이 있는 성악가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는 이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막달레나 윌만Magdalena Willman 이라 불린 이 여인은 미모와 재능을 모두 겸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베토벤은 그녀와 함께 빈으로 거처를 옮긴 그녀의 오빠와 새언니와도 친분이 있을 정도로 자주 만났다. 또 살롱 리사이틀에서 공연하는 성악가 막달레나의 반주자로 수 차례 만나게 되면서 연모의 마음을 키워갔다.

20대의 순진한 베토벤은 연애 감정을 키워가다 결국 그녀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하지만 결국 보기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후에 막달레나의 조카는 그녀에게 당대 잘나가는 음악가의 프로포즈를 왜 마다했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말한다. 못 생기고 반쯤은 미친 사람이잖아.그녀의 대답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막달레나와 베토벤의 관계는 연애라고 불리기도 애매할 정도로 베토벤의 일방적으로 마음속으로 사랑을 혼자 키워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혼을 결심할 만큼 그녀에게 빠져서 그렇게 마음을 주었으나(그것도 혼자) 미처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한 베토벤. 드러나 보이는 거친 성격과는 달리 순수한 감수성을 가진, 20대 빈에서 음악가로서 새발을 내딛는 꽃같이 젊은 음악가가 바로 베토벤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감미로운 2악장은 막달레나를 향한 연모를 담은 베토벤의 미소를 담은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며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던 청년 베토벤의 순수하고 피아노 협주곡 1번이 1795년에 작곡되고 1980 년에 수정되었으니, 막달레나와의 연애 사건과 시기적으로 겹치므로 꽤 타당성 있는 상상이다.

그녀에게 쓴 연애편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후에 불멸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는 미지의 여인에게 쓴 서신을 보면 그의 강렬한 연애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당신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 있나요? .... 내가 가는 어디든 당신도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무리 출중한 실력과 감수성을 갖춘 음악가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모든 음악인이 귀족과 왕족의 도움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시대상에도 드디어 변화가 시작되었다. 희한하게도 18세기 유럽은 베토벤이란 음악가가 탄생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프랑스 혁명의 물결이 일었다. 프랑스 혁명은 파리에서 일어났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정부도 시민들의 움직임을 두려워하여 시민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며 감시 했다. 특히 글에 대한 검열이 심하여 표현의 수단으로 정치적 색채가 가장 적은 음악이 융성하게 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것은 베토벤이 빈에 살기 시작하기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시민의식이 태동하고 귀족과 왕족이 이 전만한 배짱을 부리지는 못하게 된 시기에 맞춘 듯이 베토벤이라는 음악가가 당당히 등장했고, 그의 실력 또한 모차르트도 인정할 만큼 출중했다. 탁월한 실력의 인물과 그의 뜻이 꽃을 피울 만한 준비가 된 시대상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만나 위인이 탄생한 것이다.

 

 

베토벤의 연애 편지로 느껴질 만큼 감상적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은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손에서 애절하게 전달되었다. 또한 안토니오 지오반니의 지휘도 폴란드 브로츠와프 NFM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연주 역량을 한껏 높여주는데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리코더라는 작은 사이즈의 악기를 연주하는 분라는 본업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낸 안토니오의 손에서 NFM 오케스트라는 응집된 소리로 베토벤다운 음향을 자랑했다. 지휘자는 흡사 춤에 가까운 열정적인 몸짓으로 패기와 꿈을 담은 베토벤을 유감없이 담아냈다. 하지만 느린 악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아니스트의 감정선을 좀 더 촘촘히 따라가줬으면 하는 점이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았다. 절절하게 흘러가는 피아노의 감정과 함께 고조되었어야 하는 현악기 선율이 다소 밋밋하게 들렸다.

 

이 연주회의 부제인 베토벤의 미소(Usmiech Beethovena)’는 레퍼토리와 연주자 모두를 단 한마디로 표현한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베토벤의 빈 생활의 꿈을 담은 그의 초기 작품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는 우락부락한 베토벤의 모습은 간 곳 없고 미소를 머금은 청년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