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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폴란드 공연 리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위의 유럽

by 써니윤 2017. 6. 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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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위의 유럽>

 

캡틴 잭스패로우와 베토벤

 

in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No. 1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주, NFM 브로츠와프, 폴란드

 

by 써니윤

 

△ 2017년 4월 28일 폴란드 브로츠와프 NFM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 무대

 

 

최근에 개봉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는 청년 시절의 잭 스패로우가 등장한다. 갓 청소년 티를 벗은 나이의 잭은 늘 고주망태인 지금의 그에게 익숙한 나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다. 특유의 능글맞음 보다는 영리함과 당당함이 돋보이는 젊은 캡틴 잭 스패로우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싱싱했던 청년 시절이 있음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하필 왜 베토벤이야

 

2017428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만난 베토벤이 딱 이 느낌이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의 청년 잭 스패로우를 만나는 것 같이 말이다. 조성진의 연주는 심각하고 진지하고 고뇌에 찬 베토벤 대신 젊은 시절의 푸릇한 베토벤을 선사했다. 능글맞은 잭스패로우에게도 영특한 눈빛의 청년 시절이 있었듯이.

 

사실 연주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그 많은 음악 중에 베토벤이야 하는 생각부터 든 것은 사실이다. 나에게 베토벤은 청중 입장에서나 연주자로서 모두 그다지 끌리지 않는 음악이다. 운명 교향곡, 빛아 등이 아무리 유명한들 내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는지 여부는 별개 일 수 밖에 없다.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쿵쾅거림에 나는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고로 음악은 감정이 동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인데당체 베토벤 음악에는 마음이 말랑해 지질 않았다. 첫 음의 등장부터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것 같은 그의 운명 교향곡을 들으며 때로는 무례한 음악인 것처럼 느끼기도 했으니,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왜 그 많은 낭만주의 곡 대신 베토벤을 선택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연주자로서도 베토벤은 도대체 잡히지가 않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니스트 훈련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레퍼토리인데, 도대체 어떤 감성을 담아서 연주해야 할지 난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으로는 뭔가가 한참 모자랐다. 쇼팽처럼 애절하지도, 리스트처럼 기교적으로 화려하지도 아니면 모차르트처럼 천진난만하지도 않은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표면적인 말은 이해는 가지만 그 깊은 숨겨진 의미는 읽을 수 없는 두꺼운 철학책을 눈으로만 훑으며 대충 넘기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1부 후에 이어진 사인회, 놀이공원의 줄 마냥 엄청나게 길었다

 

좋아하는 연주자와 내가 가장 꺼리는 베토벤 음악과의 만남이 내게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그를 통해 만나겔 베토벤은 한 편으로 무척 기대가 되었다. ‘과연 그의 연주가 베토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베토벤도 청년 시절이 있었다

 

조성진은 흡사 내가 청년 잭 스패로우를 봤을 때의 신선함을 선사해 주었다. 우리가 알던 고뇌에 찬 베토벤 대신 젊은 베토벤이 등장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연주는 단번에 베토벤의 청년 시절로 날아가 시간 여행을 하게 해 주었다.

 

179222살의 베토벤은 고향인 본에서 빈으로 거처를 옮겼다. 상경했다는 표현이 오히려 맞을 것이다. 잘 맞지도 않는 옷을 대충 걸치고 빈에 등장한 베토벤의 외모는 단연 시골뜨기였다. 당시 빈은 유럽 전체의 음악 수도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문화적인 자원이 넘쳐났다. 본 시골 동네 출신의 베토벤에게는 그야말로 별천지였을 것이다. 아직 왕과 귀족이 있었던 계급 사회였지만 빈 만큼은 계층을 불문하고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왕족들은 음악이 기본적인 소양으로 알려져 있어서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악기를 다루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다수 되었다. 황제 자신도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오페라를 지휘하며, 여동생은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를 직접 부르는 장면이 흔히 연출되었다.

 

베토벤이 상경한 1700년대 당시 한 여행자가 쓴 글에 따르면

  빈의 왠만한 집에 들어서면 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듀엣, 트리오 에서부터 이탈리아 오페라까지 최신의 음악이 늘 들렸다. 심지어 상인들조차 유명한 오페라의 아리아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상류층부터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음악을 즐겼다.

 

20세를 갓 넘긴 베토벤이 드디어 모차르트와 하이든과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의 무대인 빈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한국의 깡촌에서 태어난 이가 뉴욕 한 복판에 처음 가본 것 이상이지 싶다.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토벤의 모습. 하지만 20대 부터 이러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본 출신의 시골 촌뜨기 베토벤은 사투리를 쓰며, 귀족을 상대할 기본 예절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 실력 하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피아노 협주곡: 새로운 빈 생활의 꿈을 청년의 목소리로

 

빈에 도착하자마자 하이든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후에 그는 나는 하이든에게서 해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을 만큼 자신만만했다. 결국 스승인 하이든이 영국으로 연주여행을 간 틈을 타서 협주곡 두 개를 작곡하여 무대에 올리게 되는데, 이 곡이 바로 조성진이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엄밀히 따지만 2번이 먼저 작곡되었지만, 1번이 먼저 출판되어 1번으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시골 출신이지만 넘치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찬란한 빈 생활의 첫곡인 만큼 젊은 베토벤의 끓는 피가 흐르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베토벤 피아토 협주곡은 패기와 열정 그리고 베토벤의 꿈이 담겨있다.

 

베토벤이 빈 생활을 얼마나 결연한 의지로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빈에 도착한지 단 6주만에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독일 서부지역인 본에서 빈까지는 900km 에 달해 지금의 고속도로로 달려도 8시간이 꼬박 걸리는 거리도 거리지만, 그보다도 그는 빈에서 음악가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빈에 발을 들인 이상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베토벤의 결심의 정도는 그가 얼마나 빈 생활에 대해 희망과 꿈을 품고 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베토벤의 굳은 의지와 패기를 담은 곡이 바로 빈에서의 첫곡인 피아노 협주곡인 것이다. 실제로 베토벤은 평생 동안 본에 돌아가지 않았고, 작곡만으로 살아간 최초의 음악가 그리고 고전주의를 지나 낭만주의를 연 작곡가로 음악사적인 큰 획을 긋게 된다.

 

백미: 낭만적인 2악장과 청년 피아니스트 조성진과의 만남

 

빈 생활에 대한 부푼 기대와 희망을 청년의 젊은 목소리로 담은 곡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운명 교향곡과 같이 30대 중반의 베토벤이 지은 곡과 다른 신선함을 선사한다.

 

연주자의 역량은 빠르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에서도 드러나지만 특히 느린 곡에 청중을 어떻게 집중시킬 수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특히 느린 악장인 2악장에서 그 빛을 발한다. 진짜 베토벤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달콤한 2악장은 투박해 보이는 외모의 베토벤도 20대 초반 당시에는 청년의 섬세한 감수성과 사랑스러움이 있었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특히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지루해지기 십상인 느린 악장에서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줬다. 느리게 움직이는 음과 음 사이 간격을 꿈꾸는 듯한 청년 베토벤의 낭만적인 향기로 채운 그의 연주 덕에 2악장은 앳된 베토벤을 만나게 해준 일등 공신이 되었다.

 

베토벤의 빈 생활의 꿈을 담은 그의 초기 작품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는 우락부락한 베토벤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오직 청년의 파릇하고 목소리가 담겨있다. 음악가로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은 청년 베토벤의 모습이 아마도 쇼팽 콩쿨 우승을 거머쥔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모습 그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는 공부하는 피아니스트의 기가 막힌 해석을 선사해 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 2017년 4월 28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을 직접 보고 적은 후기 입니다.

 * 참고문헌

Suchet, John <Beethoven, The man revealed> Elliot & Thompso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iano_Concerto_No._1_(Beethoven)

△ 20대의 앳된 베토벤. 청년 잭 스패로우처럼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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